80년대만해도 현대차의 변속기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당시는 하도 잘 고장난다 해서 '유리 변속기'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변속기가 현대차의 약점이라는 지적은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의 현대차 변속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인정 받았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파워텍은 미국 크라이슬러 그룹으로부터 약 1조 2천억원 규모의 전륜 6단 자동변속기 수주에 성공했다.

또, 현대파워텍 관계자에 따르면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에 전륜 6단 자동변속기 공급 최종 협의를 앞두고 있다. 피아트와 계약이 성사되면 현대차그룹의 자동변속기는 북미 시장을 넘어서 유럽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현대차 변속기 품질은 국내 경쟁사들까지 인정한다. 지난해 국산차 제조사인 쌍용차는 현대파워텍으로부터 약 1215억원 규모의 전륜 6단 자동변속기를 구입했다. 생산량의 80%를 유럽과 중동 등지로 수출하는 르노삼성에서도 현대차 변속기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 현대차그룹 변속기 역사…전량 수입하던 한국, 자체 기술개발까지

현대차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 들었을 당시 한국에는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에 대한 기술력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보니 주로 일본 변속기를 전량 수입했다. 이후 70년대 들어 현대차 포니에 탑재된 3단 자동변속기는 일본 도요타 계열사인 아이신 제품이었고 엑셀에 장착된 3단 자동변속기는 일본의 미쓰비시에서 수입했다. 현대차는 이 기간을 기술도입시기로 분류한다.

▲ 현대차 변속기 발전 과정
1980~1990년대는 기술 개발 단계였다. 이때 구형 엑센트 및 아반떼에 장착된 4단 자동변속기는 일본 변속기를 토대로 개량을 하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 단계인 1990년대에는 미쓰비시의 4단 자동변속기의 라이센스를 받아 독자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5단 자동변속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했으며 이전에 비해 내구성 등이 향상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완성도가 일본 메이커나 독일 메이커에 비해 아직은 못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변속기 개발에 지속적으로 매달렸다. 당초 독일 ZF와 공동으로 변속기를 개발하기로 했으나 방향을 선회해 그동안 쌓아온 변속기 제작 노하우와 긴 연구기간, 개발비용을 보다 늘려 독자적으로 6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 전륜 6단 자동변속기…현대차그룹의 '터닝 포인트(전환점)'

현대차그룹이 지난 2009년 1월 독자적으로 개발에 완성한 전륜 6단 자동변속기는 그랜저TG에 처음 적용됐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4·5단 변속기를 대체해 성능 및 연비를 향상시키고 상품성을 높인 전륜 6단 자동변속기를 전세계 완성차 업체로는 3번째로 독자개발에 성공해 세계 자동변속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무엇보다 이 6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되면서 소비자들의 변속에 대한 불만이 크게 줄었다. 현대기아차 파워트레인 개발연구소 측은 그동안 소비자들이 불만으로 제기해온 내구성 문제와 직결감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변속기를 개발했다.

현대차 측은 이전 세대 변속기의 초기 제품 내구성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당 300만킬로를 기준으로 주행테스트를 거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인정받고 나서야 차량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내구성 향상은 변속기 내부의 각 부품 공급사들의 품질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의 노력이 빛을 봤다는 평가도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의 부품업체 지원 등이 이뤄져 이른바 '상생'의 좋은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 현대차그룹 전륜 6단 자동변속기

개발 초기 단계에는 기존 양산중인 5단 전륜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6속화하는 방식을 추진했으나 사이즈 및 중량이 커지고 원가가 상승함에 따라 신개념의 6단 자동변속기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연비와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이는 개발 비용이 크게 늘더라도 판매를 늘리고 생산비를 줄이는 결정으로, 현대차 입장에선 세계를 상대로 '규모의 경제'로 돌입하겠다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특히, 그랜저 3.3 모델 기준으로 기존 장착되는 전륜 5단 자동변속기와 비교했을 때, 독자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는 연비가 12.2% 향상됐으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발진가속은 2.5% 향상됐고, 시속 60km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추월가속은 약 11% 향상됐다. 중량도 5단 자동변속기 대비 12kg 경량화 됐으며, 부품수도 62개나 감소됐다.

현대차그룹은 이후 6단 전륜 자동변속기를 쏘렌토R, 투싼ix, YF쏘나타, K7, 스포티지R, K5, 포르테, 아반떼, 엑센트, 벨로스터, 프라이드, i30, i40 등 경차를 제외한 모든 전륜구동 신차에 순차적으로 탑재되고 있다.

◆ 후륜 8단 자동변속기…세계 최고 수준 오른 신호탄

현대차는 지난해 국산차 최초로 후륜 8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2012년형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후륜 8단 자동변속기 개발로 기존 제네시스와 에쿠스에 적용되던 독일 ZF와 일본 아이신에서 수입한 6단 후륜 자동변속기를 대체할 수 있는 독자 파워트레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 현대차그룹 후륜 8단 자동변속기

현대차그룹은 6단 자동변속기 개발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신기술을 바탕으로 100% 순수 독자 기술로 후륜 8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또 가속성능 및 연비 향상, 부드러운 변속감, 소음 및 진동 개선 등의 성능 향상과 127건의 특허 획득을 달성했다고 전했다.

BMW, 렉서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도 후륜 8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변속기 업체 ZF, 아이신 등의 제품을 사용하는 등, 자체 개발에 앞장선 현대차와는 차이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후륜 8단 자동변속기에는 저점도 ATF(AUTO TRANSMISSION FLUID) 및 토크컨버터의 미끄러짐을 줄이는 적극적인 락업 제어를 적용해 연비, 가속 성능 및 직결감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변속기내의 솔레노이드 밸브에서 직접 밸브바디 압력을 제어하는 기술을 적용해 유압 응답성 및 변속감도 향상시켰다.

또 센서 및 배선 일체화(E-Module)을 통해 전장품의 신뢰성을 향상시키고 고강도 알루미늄 캐리어와 플라스틱 오일팬을 적용하여 중량을 한층 경량화하는 등 다양한 신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이와 함께 내구력을 개선하기 위해 고강도 기어강 소재와 내열성 및 내마모성이 우수한 마찰재를 적용했으며, 자동변속기 일체형 케이스 적용으로 진동 및 소음을 개선해 조용하고 부드러운 변속이 가능하도록 했다.

◆ 더블클러치 변속기…연비·성능을 모두 잡는 차세대 변속기

현대차는 지난해 국산차 최초로 더블클러치 변속기(DCT)가 장착된 벨로스터 DCT팩을 출시했다.

더블클러치 변속기는 연비 향상과 더불어 수동변속기가 갖고 있는 스포티한 주행성능과 자동변속기의 편리한 운전성을 동시에 갖는 차세대 자동화 수동변속기다.

▲ 국산차 최초로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장착된 현대차 벨로스터

더블클러치 변속기는 홀수 기어를 담당하는 클러치와 짝수 기어를 담당하는 클러치 등 모두 2개의 클러치를 적용해 하나의 클러치가 단수를 바꾸면 다른 클러치가 곧바로 다음 단에 기어를 넣어 변속 시 소음이 적고 빠른 변속이 가능한 구조를 갖췄다. 또 수동변속기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비를 개선해 친환경적인 면에서도 매우 우수하다.

더블클러치 변속기는 소음 및 진동 성능을 향상시키는 듀얼 매스 플라이휠과 더블 클러치, 2개의 입력축 구조를 갖고 있는 동력전달장치, 전기 모터식 액츄에이터 등을 적용했다.

◆ 현대차그룹 10단 변속기 개발…기술을 선도한다

지난해 9월, 미국 오토모티브뉴스는 현대차그룹 파워트레인 담당 박성현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는 2014년 출시 예정인 제네시스·에쿠스에 현대차그룹이 새롭게 개발한 10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고 보도했다.

박성현 사장은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10단 자동변속기는 현대차의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에 장착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10단 자동변속기 개발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독일의 변속기 업체 ZF가 9단 변속기 개발을 완료했지만 이는 소형차를 위한 전륜구동 전용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보다 한단계 발전된 형태인 후륜구동 대형차 변속기 개발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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