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짝 찾기]··· 자동차 3호. 도요타(Toyota)

[나만의 짝 찾기]··· 자동차 3호. 도요타(Toyota)

민병철 칼럼리스트
해외 사업 관련 프로젝트 수행차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전이 있었던 콩고민주공화국,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테러가 빈번히 일어났던 케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등 불안하기 짝이 없는 국가들이죠. 하지만 생각보다 치안 수준이 안정적이라 놀랐으나, 하나같이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고, 포장도로가 있더라도 파인 곳들이 많아 차나 몸이나 작살나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들 국가에서 대부분 같은 브랜드의 차를 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업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들을 자신의 공장으로 불러들인 기업,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만들고 파는 기업...‘자동차 3호 도요타(Toyota)’입니다.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
 
도요타는 ‘도요다 자동직기’라는 방직공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고 방직기기를 만들다 자동차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던 아들 놈(도요다 게이치로)이 뉴욕을 다녀온 이후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시보레 자동차를 분해/조사하면서 도요다만의 실린더를 개발하는 등 토요다는 자동차 기술을 체득했고, 2년 후 토요다 AA라는 자동차를 만들게 됩니다. 
 
▲ (사진 ‘도요다 게이치로')
 
 
▲ (사진 AA 프로토타입 개발 과정)
 
 
▲ (사진 ‘토요다 AA’)
 
 기술에 대한 남다른 집착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운행 중 차에 문제가 발생하면 게이치로 사장이 직접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고도 합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바로 해결하고 있는 도요타의 독특한 철학도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이후 1937년 ‘도요타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여기서 센스있는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어느 순간 회사 이름이 ‘토요다'에서 ‘도요타'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이름과 관련한 자그마한 에피소드 하나!! 도요다 AA를 출시하면서 동시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공모를 실시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브랜드에 ‘도요다'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끝의 글자 ‘다'를 ‘타'로 바뀐 이름이 당선되어 현재의 ‘도요타'가 만들어졌습니다.
 
 운도 좋았다!!
 
 사실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도요타가 기술력만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는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도요타가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인한 사건(?)이 2가지입니다.
 먼저, 6.25 전쟁. 자체적으로 AA차량을 만들기도 했으나 도요타는 자금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고, UN군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군용 트럭을 조달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납품회사가 바로 도요타였습니다. 이렇게 토요타는 도산 위기를 모면합니다. 또한 트럭 납품을 통해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자국산 자가용 개발을 시작합니다. ‘직접 개발해 만들지 않으면 내 기술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1950년대 ‘크라운’, 1960년대 ‘코롤라'를 런칭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사건. 바로 1970년대 중동 전쟁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석유파동입니다. 당시 미국 내 가솔린 가격은 폭등했고 자연스럽게 소형차의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들은 대부분은 대형차 위주였고, 소형차를 대량 생산하던 도요타의 인기는 미친듯이 올라갔습니다. 도요타는 이후 중형차 캠리를 런칭하고, 값싼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렉서스를 런칭하며 미국에서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자동차 개발의 선도에 서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이슈는 1990년대 부터 정치, 기업 측면에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취지는 좋지만 경제적인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덤벼들지 않던 이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세계 최초로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를 판매하면서, 자동차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었습니다. 
 
 
 
▲ (사진 프리우스)
 
 지속적인 상승세를 업고 도요타는 2007년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도요타의 눈부신 성장을 보면서 많은 기업들은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도요타 공장을 방문하는 등 현재 애플급(?)의 기업으로 인정받습니다. 물론 2008년 리먼 사태, 2009년과 2010년에 발생한 대규모 리콜 사태로 위기를 맞았으나, 2년 만인 2012년에 역대 최대 판매량(약 975만 대) 기록을 세우며 다시 성장에 우뚝 서게 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입 자동차는 높은 가격으로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위 고급 자동차 브랜드들이 판매 순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설사 고급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유럽 출신의 자동차들이 대부분이죠. 그 중 도요타에 대한 선호도가 유럽 브랜드처럼 높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자동차를 오랫동안 탈 수 있도록 하는 도요타의 기술 집약적인 생각은 재조명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병철 칼럼리스트
indochandl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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